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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아하는데 잘 하기까지 하는 일을 그만 둔다는 것
    단풍국에 살아요/직장 생활의 기록 2022. 10. 11. 04:38

    우리 회사는 12월에 올드 몬트리올 노트르담 대성당 바로 옆 건물로 이사를 간다.

    올해는 가을이 시나브로 오는 것이 아니고 뭔가 확, 와버렸다. 도톰한 가디건을 입고 따사로운 가을 햇볕을 즐길 새도 없이 패딩을 입고 외출을 해야 하는 기온으로 떨어진 날도 다수이다. 이러저러한 고민과 분노가 가득한 마음으로 지냈던 여름이 지나버린 건 정말 다행이고 나는 25일 후 퇴사를 앞두고 있다. (게으름을 부리며 포스트 마무리를 안 해서 게시가 되는 날 기준으로는 18일이 남았다) 

     

    만 50개월을 일 하고 정든 회사를 떠나게 된다. 시원 섭섭하다. 그리고 당연히 섭섭의 지분이 훨씬 크다. 요새는 곧 회사를 떠나기 때문에 새로운 파일을 맡지 않아 요새는 업무 부담이 확 줄고, 사람들과 부딪힐 일도 없이 잔잔하게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 이민뉴스 포스트를 올리는 정도의 일이라 그런지 크게 좋다 나쁘다할 일이 없다.  아니 사실 좋다. 나는 멀티태스킹이 참으로 어려운 사람인데 지난 50개월은 자본주의의 힘으로 안 되는 멀태를 벅차게 하느라 고생이 많았다 내 자신. 

     

    한국을 다녀와서는 본격적으로 다시 취업준비를 해야 할테니 이력서를 미리 손 보면서, 그리고 대략적으로 내가 원하는 류의 직업들은 어떤 자격조건이 추가로 갖추면 내 이력서가 좀 더 돋보일까를 탐색하느라 링크드인과 인디드를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나는 이 일을 참 좋아했다는, 한다는 것을 깨달아 마음이 이상하다. 심지어 대표님은 내가 정말 이 일에 맞는 사람이라고, 이 일을 참으로 잘하는 사람이라고 누누히 말 해 주셨는데 막상 다른 길을 가야지하고 주섬주섬 채비를 하고 있자니 마음이 뒤숭숭한 것이 사실이다. 일이야 사실 뭘 하든 난 잘 할 것이라는 자신감(?)은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졸업 전 시작한 일이 우연찮게 정말 내 적성에 맞았고 (그럴 것이라는 예감이 있긴 했지만) 우리 회사는 크지 않기 때문에 내 경력에 비해서 꽤나 많은 카테고리를 경험 할 수 있었으며, 누군가가 길을 찾는 여정을 함께 해 주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은 보람을 주었다. 그리고 그 재미와 보람으로 50개월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버틴다, 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정말 그 만큼 이 분야의 고객들을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이 일을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너무나도 무례한 일부의 사람들을 더 이상 견뎌 낼 힘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니까. 어쨌든 대부분에게 외국에서 신분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나 많은 기회 비용을 투자하여 이민을 준비하고 신청하는 것은 인생의 대사이니까 예민 해 지거나 본인이 걱정이 되는 부분에 집착을 하게 된다거나 하는 것들은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넘어서서 무례하거나, 업무를 넘어 선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길 원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고, 고객이라는 이름 하에 멋대로 휘두르는 감정의 흉기들은 이 분야에서 일 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결국은 차갑게 만든다.

     

    자격이 없는 혹은 자격은 있지만 경험이 없어 실수가 많은, 그런데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이민 회사나 유학원들이 많이 존재하는 것을 우리도 안다. 일단 유학원은 적어도 CCIC가 없는 곳이라면 비자, 이민 관련 업무를 돈을 받고 진행해서는 안되고, 특히나 이민 문제는 유학원에서 가이드를 받을 일도 아니기도 하다. 여튼 같은 분야에서 일 하는 사람들이 이러 저러하게 사고를 많이 치다 보니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도끼눈을 뜨고 보는 경향도 없잖아 있고 이 부분을 일부 이해는 하나 늘 최선을 다 하고 있는 우리마저도 같은 시선으로 비춰진다는 것이 참 억울했다. 우리와 오랫동안 여러번 일을 했던 고객이라면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그게 아니라 우리 회사와 한번도 일 해 보지 않았으면서 이민회사라는 이유로 색안경을 쓰고 근거 없이 욕을 하고 다니거나, 일을 맡기면서도 신뢰가 없어 끊임없이 의심을 한다거나 하는 일들도 종종 있어 마음이 상한 적도 많다. 차라리 그냥 여기까지면 이전의 대리인과의 관계에서 부당한 일을 많이 당해서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으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더 화가 나는 것은 우리가 본인을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빠르고 친절하게 일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이것을 역으로 이용하여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여 정당하게 쌓아온 이 곳에서의 좋은 평판들을 들먹이며 우리가 해 주어야 하는 일이 아닌데도 본인이 원하는 것을 꼭 들어줘야 하는 것 처럼, 그렇게 가스라이팅 아닌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결국 이 일이 싫어지는 지경에 이르렀고, 몸이 아플 정도로 이 일에서 벗어나고 싶어져버렸다. 분야의 문제를 떠나서 대표가 아닌 직원들에게 막 대하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고,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는 태도가 아주 무례한 사람들도 많았다. 보통은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있으면 또 좋은 사람들이 전해주는 감사나 칭찬에 에너지를 받고 하는 식이었는데 올해는 유난히 이상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아서 도무지 힘이 다시 채워지지 않더라. 나는 타고난 오지라퍼라 지금 하는 일이 참 좋은데 이런 무례함과 몰상식 속에서 인류애와 삶의 우아함을 잃어가는 것도, 감사보다는 불평이 많아지는 내 자신이 싫어 견딜 수가 없어졌고 결국 나는 이 일을 떠나 30대 중반에 다시 진로고민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보통 새로운 무언가를 하는 것을 흥미로워 하는 편이기 때문에 이렇게 진로고민을 시작하고 나서 몇주간은 나의 새로운 여정에 대한 설렘이 걱정과 고민을 압도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그런가, 이미 잘 쌓아온 경력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아주 새로운 분야로의 관심은 이내 곧 부담이 되었고, 비슷한 분야는 해 볼만은 하겠지만 오지랖의 제한이 분명해 보였다. 당연히 지금 당장은 무언가를 결정할 수 없고, 한국 방문 등 여러 여행 계획으로 일을 다시 시작 할 수 있는 시기는 내년 3월이나 되야 할테니 나에게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어 조급 해 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마음 한켠 자리잡은 고민이 쉬이 사라지진 않는다. 

     

    어쩌면 지금 하고 있는 이 고민들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나랑 잘 맞았고, 잘 해내고 있었다는 반증일테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싶기도 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벗어난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만 하는 상황이었다면 지난 4년이 넘는 시간은 분명 힘들고 어렵기만 한 시간들이었을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까? 이 포스트는 내 예상보다 많이 길어졌는데, 주절주절 길어진 이 글이 사실 '좋아하는데 잘 할 수도 있는 일을 그만 둔다는 것'에서 비롯된 미련과 아쉬움을 대신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제목에 대한 답이나 결론을 내리기는 참 어려울 것 같고, 이건 또 다른 커리어를 시작 해 봐야 생각이 정리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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